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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LOG(내마음의 항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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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Apr 2024
숨을 들이쉬는 유일한 방법

직장인의 긴장은 자기역량의 입증을 요구 받을 때 생긴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합해서 6년, 대학 4학년을 거치는 동안 늘 경쟁에 시달렸다. 늘 자격이 있는지 입증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회사에서도 줄곧 역량을 증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오래 몸담았던 마케팅, PR 영역에서도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더 싼 가격에 더 나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경쟁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간절함만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경쟁에 이기더라도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영혼을 갈아 넣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특히 대행업은 사람이 눈을 뜨고 있을 때만 돈이 벌리는 구조다. 좋은 말로 사람의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고 솔직한 말로는 내 시간을 맞바꿔 돈을 버는 구조라는 소리다.

문득 입증하는 삶이 아니라 성장하는 꿈을 가지면 어떨까 상상했다. 비록 오늘 넘어지고 깨지더라도 내일은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 그 속에 자기효능감이 작은 성취를 맛볼 수 있다면 오늘 비록 패배하더라도 아쉬움은 덜하겠다 생각했다.

‘멈추는 게 실패다’라는 말이 있듯이 계속하는 힘이 결국 우리를 한뼘 더 자라게 만든다. 그래서 욕심내지 말고 묵묵히 걸어가는 게 중요하다. 높이 올라가는 것보다 옆으로 넓어지는 것이 성장하는 삶에 더 잘 어울린다.

방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사진첩에서 먼지낀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숨을 들이쉬는 유일한 방법은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커지려면 기꺼이 작아져야 합니다. “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건내준 엽서의 글귀였다. 머리 속을 두드리는 느낌이었다. 누가 이야기한 것인지 모를 문구가 유년기 내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알게 모르게 삶에 영향력을 미쳤다.

어른이 되고서 노아벤샤라는 사람의 말이라는 걸 알게됐다. 시인인 동시에 철학가이고 명상가이면서 베스트셀러 ‘빵장수 야곱’의 작가인 그는 세계적인 제빵회사 뉴욕베이글 팩토리의 경영자였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때보다 그것들이 사실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을 때 우리는 진정한 부자가 된다.”

욕심을 내려놓고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오히려 부유함이라는 논리다. 수긍가는 주장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그릇을 만드는 것은 흙이지만 그릇을 쓸모있게 만드는 것은 그릇 속의 빈공간이다”

채우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비워야 한다. 슬럼프에 빠진 스포츠 선수가 코치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어깨에 힘을 빼고’인 것처럼 잘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가장 좋을 때의 감각을 온몸이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온전히 생각을 비워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그 속에 밥을 담을지 술을 담을지 결정할 수 있다.

커지려면 기꺼이 작아져야 하는 것처럼 욕심을 내려 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욕심을 버리는 일이 풍요로운 마음의 첫걸음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늘 집착하는 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인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을 들이쉬는 유일한 방법은 언제나 내쉬는 것이다.


손병구 at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