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ibble

MIND LOG(내마음의 항해일지)

About life-LOG Email Topica

27 Apr 2024
곁에 두고 즐길 수 있는 취미 | 아무튼 산

아무튼 시리즈는 짧아서 좋다. 문고판이라 마음먹으면 반나절이면 읽는다. 덕분에 성취감도 높아진다. 이런 걸 편집자가 염두하고 기획한 시리즈같다. 아무튼 서재, 아무튼 달리기, 아무튼 계속에 이어서 아무튼 산을 집어 들었다. 역시나 앉은 자리에서 한권을 뚝딱 읽었다.

‘내가 만약 아무튼 시리즈를 쓴다면 어떤 주제를 다룰까’에 생각이 미쳤다. 내가 풀어낼 수 있는 주제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특별할 것 없는 보편적인 취미는 있지만 아무튼 시리즈의 작가들처럼 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덕력이라고 할 만한 주제는 없다. 일에 파묻혀 내세울 즐길 거리 하나 만들지 못했다.

‘아무튼 산’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산’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어떻게 산에 애정을 느끼게 되었는지, 산에 대한 작은 관심이 왜 직업으로 연결되었는지, 산을 오르는 행위가 인생에 얼마 만큼의 의미를 가지는지, 산을 오르는 삶의 태도가 어디까지 변화되었는지 묵직하게 담겨있다.

그래서인지 작가처럼 ‘산’에서 만끽하는 ‘힐링’,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영역’ 같은 걸 만들지 못한 걸 후회하게 만든다. 누구나 인생에서 깨지기 쉬운 정서적 위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작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산을 택한다. 지리산을 처음 등반한 이래로 산의 매력을 느끼고 본인의 안식처가 산행임을 발견하고 확인받는 과정이 스토리의 중심축이다.

산을 잘알지 못했던 시기에는 주로 떼산(떼로 무리지어 산에 가는 것)에 빠졌고 이제는 혼산(혼자 산에 가는 것)하는 것이 편하고 좋아졌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사람은 가장 외로운 순간에 스스로를 혼자 내버려두길 원하고 생각을 정리하길 바라는데 작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책이 손에서 떨어질 때 떨쳐내지 못한 스트레스, 정리 못한 생각들, 늘 발뿌리에 걸리는 이유없는 패배감과 허무함을 혼산으로 달래볼까 충동에 휩싸인다. 당장이라도 가까운 청계산 트래킹을 투두리스트에 넣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총 15장 중에서 특히 13장 ‘내가 가장 나 다운 곳’이라는 챕터를 한참 바라보았다. 이 파트의 글 뭉치가 와닿고 울림을 준다.

“산이 아니어도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나는 산이 곁에 있을 때 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산이 내 삶의 작은 일부이기를 바랐지만 어쩌면 산은 내 삶의 전부일지 모르겠다는 것을”

월간 ‘사람과 산’에서 문화 잡지 쪽으로 이직한 후 산과 점점 멀어졌다가 스스로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자각하는 장면은 산에 대한 애정이 절정에 치닿는 순간이다. 마치 왕년의 스포츠 스타가 은퇴 후 방황을 거듭하다가 복귀 전 치열하게 땀흘리고 트레이닝하는 스토리처럼, 가장 작가다운 곳, 작가의 마음이 머물러야 할 곳이 바로 산임을 깨닫는 순간이 드라마틱하다.

“산에서의 나를 좋아하는 것”. 이 작은 진리를 찾은 것만 해도 인생의 귀한 소득이다.

이른바 ‘생각하는 걷기’를 취미로 만들고 싶은 나로서는 그 공간이 ‘산’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의 첫 산행은 장보영 작가가 인생에서 느꼈을 산에 대한 수 많은 감정 중 지속하는 힘, 그 원동력을 느꼈던 순간과 같기를 바란다. ‘고스란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경험을 시작으로 산이라는 존재를 ‘곁에 두고 즐기는 ‘취미’로 쌓아갈 수 있다면 그 하나로 충분할 것이다.


손병구 at 19:00